권소진    회화


 특정한 이야기를 회화의 평면적 화면에 담아내려는 수단으로써의 시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정립되어온 특질인 “그림이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가”로 이어져 왔다. 어떤 상황을 이미지로 설명하고 싶은 사라지지 않는 욕망은 나의 작업의 가장 큰 출발점으로 작용한다. 어떤 사건의 문장을 제시어 삼아 전환된 이미지들은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경계에서 '그림이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가'라는 회화의 오랜 특질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회화가 가지는 정지된 이미지의 특성과, 이를 관통하는 서사의 흐름에 관하여 이상적으로 재구성된 이미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관계맺고 이야기를 설명하게 되는지, 파편적인 그림을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과 연상작용을 이용하여 보여주고자 한다.

 나의 작업은 뉴스기사나 소설, 지인의 이야기 속 상황을 상상한 파편적 이미지로 구성하면서 시작된다. 이러한 시리즈는 나 자신이 경험한 만남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상황에 빗대어 이야기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일상에서 튀어오른 뾰족한 순간을 운명, 혹은 우연으로 받아들이는 개인의 선택과 해석, 그리고 감정들은 '우연' 혹은 '운명'이라는 양가적 태도로 설명되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게되는 수많은 관계의 출발점들이 한 끗 차이로 결정지어질 수도 있다는 로맨틱한 불안함을 동반한다.

 회화는 더는 닮지 않을 필요가 없기에, 진실한 이유들은 매끈하고 흐리게 발린 붓질 밑으로 숨겨진 채로 사건의 납작한 표면의 이미지가 드러나게 된다. 이는 물리적 실체가 없는 예술, 물질로서 구분되지 않는 동시대 미술의 매체론 속에서, 여전히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해지는 회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료될 수 밖에 없는 지점들이 무엇인지, 그것이 발화하는 양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나는 이를 상황-설명적인 그림이라 칭하는데, 이는 사건의 재현이라기 보다는 전환에 가까운 의미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말과 그림을 통해 떠올리는 관습적인 기억들이 이를 통해 어떻게 새롭게 보여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